- 아시아 최초로 22세 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(5년마다 개최, 주요 우승자로는 마우리치오 폴리니, 아슈케나지 등) 우승을 거머쥔 고전부터 근대까지 다양한 레파토리를 갖고 있는 베트남 출신 피아니스트
- 물론 그가 가장 잘 연주하는 곡들은 쇼팽의 곡들 (사실상 쇼팽 스페셜리스트 연주자 같음)
- 모친에게 피아노의 기초를 배웠으나, 소년시기에는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습을 지속하였고 나무판자에 피아노 건반을 그려 연습한 일화로 유명
- 전쟁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베트남의 음악 교육은 열악 그 자체라서 나중에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어가서도 가장 테크닉이 떨어지는 학생이라는 수모를 피할 수 없었고, 집중적인 지도를 따로 받아야 했음
- 금전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다른 이들과 달리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장거리 기차 여행을 감수해야 했고, 대회 참가를 위한 연주복을 마련할 수 없어 다른 이의 옷을 빌려야 했음
- 1980년 쇼팽 콩쿠르에서 아시아인이 사상 최초로 1등을 수상하자 한국에선 당시 손 아무개라고 하여 한국계가 아니냐 열광했으나 단교국인 베트남 사람임을 알고 침묵
- 베트남은 클래식 불모지였던 관계로 그의 우승 자체에 대해 무지, 뉴스로 다루지 않다 bbc등 해외 언론이 열광하는 것을 보고 베트남 총리가 뒤늦게 축전을 보내고 우승 상금 $500을 전액 국가 헌납 의무를 열외시켜 줌
- 그가 참가했던 해 콩쿨에 다른 유력한 우승 후보자 중 하나였던 이보 포고렐리치가 탈락한 것에 분노하여 심사위원 중 한명이었던 아르헨티나의 마르타 아르헤헤리치가 심사위원직을 사퇴
- 이보 포고렐리치의 연주는 심사위원들 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스타일이었고 당시 다른 심사위원은 그 전 ROUND에서 그가 탈락하지 않은 사실에 분노, 심사위원직을 사퇴할 정도였음
- 단 아르헤리치 역시도 당타이손의 우승, 실력을 인정했고 어부지리로 실력이 부족한데 운이 좋아 우승했다는 말은 전혀 가당치 않음 - 이후에도 그는 지속적으로 쇼팽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고 있음
- 한국은 2015년에 최초로 한국인 우승자(조성진, 당시 23세)를 뒤늦게 배출함, 2015년에 당타이선의 제자들이 3, 4, 5위를 차지할 정도로 당타이선의 제자들도 수준급의 실력을 자랑함
www.hankyung.com/life/article/202002209950Y
시간으로 쌓아 올린 감정의 탑…이보 포고렐리치의 쇼팽
시간으로 쌓아 올린 감정의 탑…이보 포고렐리치의 쇼팽, 문화스포츠
www.hankyung.com
www.dangthaison.net/reviews.html
Reviews
“A genuine musician”-Isaac Stern “A fully realized and exciting performance”-The New York Times “Une interpretation lumineuse”-Le Monde “Maitre des equilibre ... Du grand art”-Diapason “Irreprochable Chopin de Dang Thai Son”-La Presse "
www.dangthaison.net
International Chopin Piano Competition (Le Concours international de piano Frédéric-Chopin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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